「 Faded / Shaded」 - D과정 김희연 선생님 개인전
2015. 5. 7(Thu) ~ 2015. 5. 28(M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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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김희연의 작업을 두고 ‘소리가 사라진 그림’이라 말한 적 있었다. 바람이 불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며 바스락거릴 법도 한데, 오래된 건물 구석에서는 시멘트 조각이 밟히며 버석 댈 법도 한데, 오래 된 사진인 듯 정지된 풍경 안에서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곳곳에서 흔히 보이는 오래된 건물과 건물 주변을 포위하듯, 혹은 자리싸움이라도 벌어진 듯 제자리를 찾아 버티고 서 있는 나무들은 책상 위에 올려놓은 화병이나 책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었고, 그래서 그 작품들을 모아 전시를 하며 제목을 ‘still, life’라 붙였었다. still과 life사이에 쉼표를 하나 넣은 것은 그 움직임도 소리도 없는 풍경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었기 때문이었다. 정리하면 ‘그래도 숨죽여 살아있는 풍경’ 쯤으로 그녀의 작업을 읽었던 것 같다.
종종 김희연의 작업을 보며 하이쿠_俳句를 읽을 때의 감성을 되새기곤 한다. 항상 곧게 뻗은 단정한 직선의 건물벽과 담, 명도가 낮은 녹색을 사용한 나무와 풀, 겨울인 듯 새파랗게 갠 하늘, 단정한 선이 만든 부동의 풍경에 회화성을 더하는 작업의 질감은 김희연의 그림을 생각할 때 항상 떠오르는 이미지들인데, 아마도 그렇게 각인된 이미지들이 생략과 절제가 만든 절제의 미를 발생시키는 하이쿠의 엄격한 법칙과 연관되어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듯 싶다. 특히 널리 알려진 작가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 중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같은 작품은 김희연의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무음_無音’의 상태 그대로다. 여름날 매미가 그렇게 시끄럽던 이유는 7년의 밤낮을 흙 속에서 살아있었기 때문이고, 일주일 안에 후대를 남겨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죽어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갈 때 남은 것이라곤 등 터진 껍질뿐. 김희연의 작품 속 건물들도 어떤 용도로든 시끄럽게 돌아가던 때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말없이 나무에게 자리를 내주고 매미 껍질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천막을 그린 이번 작품들에는 ‘오래 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 라는 하이쿠로 대구_對句 할 수도 있겠다. 사실 김희연의 작품 속 시멘트 건물이나 천막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다. 다만 이번 전시에는 천막들이 주된 이미지가 되었을 뿐이다. 흔한 풍경이 미묘한 풍경을 일으킬 때가 있다. 이번엔 천막이 더 그랬을 뿐이다. <정지한 낮>이나 <Rain or shine>과 같은 작품에서 직선은 사라지고, 공간을 잠식하는 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의 작업이 예전과 다르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작품의 주된 이미지를 선택하게 된 계기와 이유가 그 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는 여전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눈 여겨 보고 있고, 그 발생과 소멸의 자취를 더듬고 있으며, 그 자취를 통해 사람과 그 사람이 속해있는 사회의 속내를 찾아내려 하고 있다.
천막을 그린 작업에 굳이 다른 시구를 대입한 이유는 뜬금없이 들리는 소리 때문이다. 이미지가 달라지자 사방에서 작은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햇빛을 받아 팽창하는 천막천이 내는 소리, 바람이 훑고 지나가는 소리, 천막을 지탱하는 프레임이 흔들리며 내는 삐걱대는 소리까지…… 해가 좋은 날 천막 안에 들어가있으면 들릴 법한 소리들이 작업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히 들린다. 조용한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들며 만든 파적_破寂 의 순간이 이제 김희연의 작업에서도 발견된다.
바람이 부는 날 창문을 열고 집에 앉아 있으면 분명 어디선가 천막이 펄럭대는 소리가 들린다. 동네 어디서도 눈에 들어온 적 없는데 바람을 맞아 펄럭대는 소리를 지르는 걸 보면 어딘가 있기는 분명히 있나 보다. 생각해보면 집 옥상이나 차고 같은 곳에 천막을 쳐놓은 경우가 종종 있고, 동네 슈퍼마켓이나 정육점에도 천막이 있다. 천막은 그렇게 사방에 있으면서 이렇게 존재감이 없다. 그건 꼭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은유인 것 같다. 남 보기 좋은 모습을 하고 밖으로 나와 열심히 제 할일 하고 있어도 어디서 누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풍경과 시스템에 뒤섞인 ‘사람’은 통 드러나질 않는다. 뭔가 일이 터져야 존재가 드러나는 것이 꼭 바람 부는 날만 펄럭대는 동네 천막을 닮았다. 그리고 사람도 천막도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에, 시간에, 상황에, 시스템에 바래지지 않는가. 일견 천막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도 사람이 내지르는 소리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천막에게도, 사람에게도 그건 늙어가며 바래지는 삶에 대한 한탄일지도 모른다.
한가지 더 눈에 띄는 것은 시선의 변화다. 김희연의 이전 작업들을 밖에서 바라본 건물과 나무의 이미지로 연상할 수 있다면, 이번 작품들 가운데는 천막 안에서 바라 본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 안에서 밖을 바라본다는 것은 이제 내가 그 안에 들어가있음을 분명히 하는 행위. 가장 쉽게 만들어지고, 또 가장 쉽게 사라지지만 어쩌면 가장 많이 존재하고 있을지 모르는 천막은 그녀가 오랫동안 주목했던 세상의 속도를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상일 수 있다. 그런 천막 안에 들어가 그 안의 모습을 그리는 작가는 이제 세상의 속도를 온 몸으로 체감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김희연이 천막 안에서 발견한 것이 무섭도록 빠른 변화의 속도만이 아니라, 그 얇은 천막이 줄 수 있는 좋은 것들이기를 바란다. 오래 된 천막 안에 들어가 있으면 언제나 무엇인가 되려 명확해졌던 것 같다. 해는 더 따뜻했고, 부는 바람은 소리로 제 존재감을 키웠다. 빗소리는 작은북 소리처럼 들렸고, 천막의 색은 밖에서 볼 때보다 몇 배는 더 환하고 밝았다.
여전히 세상은 엉망으로 변하고 있고, 그 속도는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지만 그래도 자리를 지키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이 있으며 생겨나고 있는지, 그래서 사회와 시스템은 무섭도록 거대하고 그 안에 있는 나는 그저 바랜 천막 같아서 당장이라도 철거될 것 같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해를 더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존재가 되고 있는지, 그래서 얼마나 필요하고 아직은 소중한 것인지, 그림을 그린 작가도, 그림을 보고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전시는 읊조리는 기도 같은 것이 된다.
- 갤러리 버튼 함성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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